우울한 제주에서의 첫 아침
긴 거리를 이동한 후라 그랬을까. 제주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은 아이의 울음과 짜증으로 시작했다. 생각보다 그 정도와 강도도 쎄고, 시간도 길어서 어딘가 아픈가 싶을 정도였다. 그 시간 동안 나와 와이프는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었고, 아침도 숙소에서 전날 포장해온 국밥으로 대충 떼우고, 이 우는 아가를 데리고 외딴데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해야 하나 고민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다가 일단 어디든 나가야 할거 같아서, 나갈 준비를 하고 답답한 마음에 근처 가까운 바닷가인 표선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그나마 아기가 좀 진정되는듯 하여,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바람을 좀 쐴까 했는데, 바람이 너무 쎄게 불어서 산책을 하기엔 불가능해 보여,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좀 쉬기로 했다.
위기의 하루 일과
거의 점심무렵이 다 됐을때라 브런치 겸 점심용으로 메뉴를 하나씩 시키고, 커피와 음료를 마시면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동안 아가는 기분이 좀 좋아진 거 같아 다행이었지만, 엄마 아빠는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앞으로 남은 여행이 계속 이런식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지, 이렇게 서로 기분이 안좋은 상태에서 여행을 계속 할수 있을 것인지, 누구한명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건 아닌지까지 심각하게 고민이 되던 때였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사이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개선할 점이나 잘못된 방식을 어떻게 고쳐나가야할지 서로가 예민한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아쉬운 소리도 크게 다가와 상처가 되기도 하고, 미쳐 몰랐던 부분을 알기도 했으나 감정이 상한 상태기도 하고, 아기도 낮잠을 잘 시간이 되어 가는거 같아 일단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아기를 침대에 재워두고, 우리는 각자 한동안 말없이 앞으로 무엇을 할것인지, 어떤 여행을 할것인지 계획을 세우면서 의견을 맞춰보았다. 우선 표선에서의 일정을 대략적으로 짠 후에, 아침과 점심이 좀 부족했기에 조금 빠른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하필 영업을 하지 않는 날이어서, 그냥 숙소 근처에 있는 고기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하고 들어갔다. 명가돈촌이라는 곳이었는데, 고기는 다른 가게들과 비슷한 수준인듯해보였지만, 밑반찬이 깔끔하고 잘 나와서 검색해보니, 저녁때 고기보다도 점심때 정식이 유명한 집이었다.
일단 우린 고기를 주문하고,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카페에서 얘기 나눴던 부분을 생각을 안할수가 없었다. 아내의 어려움 중 하나가 외식을 하게 되면, 아기가 계속 엄마한테만 붙어있으려고 하니 맘편하게 식사한번 하질 못한다는 것이었다. 난 나름대로 아내를 위해 음식도 구워서 덜어주고, 아기에게 먹여주고 안아주기도 하려 했지만, 항상 아내는 아기를 먼저 챙기고 나중에서야 남은 음식을 먹다보니 맨날 식은 음식만 먹고 있었다는 그 말에 더 헤아리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그날은 일단 고기를 먼저 굽고, 아이도 좀 먹인다음에 내가 아기와 같이 밖에 나가서 별도 좀 보고, 꽃이나 열매도 구경하면서 아내가 맘편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거 같다.
그렇게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근처에 어디 갈데가 없을까 살펴보다가 표선 해수욕장 근처 해비치 리조트에 놀러 가보기로 하고 무작정 떠났다. 뭐가 있겠나 싶어서 돌아보는길에 작은 볼풀장이 있는 유아방이 있어서, 내가 거기서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놀아주는 동안 아내는 옆에 있는 오락실에서 노래방도 하고 펌프도 하며,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아기는 엄마 껌딱지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엄마를 부르며 울고불며 떼를 써대니 놀고있는 엄마에게 갈수 밖에 없긴했지만, 짧았지만 강렬했던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끝나고 나가는길에 빵을 사달라는 아가의 말에 라운지에서 바나나빵을 하나 사서 자리에 앉아 먹고 가려했으나, 빵을 다시 먹고 싶지 않아진 아가 덕에 앉자마자 바로 일어나서 숙소로 복귀하였다.
잠자리 딥토크
돌아와서는 아기를 씻기고, 어렵사리 재운다음에 우리도 감정적으로 힘든 하루를 마무리 하기위해 잠자리에 누웠다. 평소에도 자기전에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하는 우리 부부여서, 그날도 할말도 많았고 서로에게 쌓인 감정도 있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내면서 아내는 눈물도 흘렸다. 나는 아기가 하고 싶어 하는걸 최대한 해주게끔 하는 아내의 육아 방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에 멀리서 지켜보거나 자리를 피하기도 했었는데, 그 모습에서 아내는 아무런 관심없는 모습이라 느끼고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그 동안 우리 부부가 잘 싸우지도 않고,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대화의 기회가 주어진게 어찌보면 소중하고 좋은 시간이었고, 언젠가는 가질수 밖에 없는 시간을 지금이라도 할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을 포기하려고까지 했었던걸 보면 지금까지 오히려 그런 어려운 시간을 정면으로 맞닥들이지 않고 피하려고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랬기 때문에 이런 서로간의 오해를 풀어주는 대화도 이런 상황에 닥쳐서야 할수 있게 되었던것 같다. 지나와서 생각하면 이때의 눈물의 대화 이후로 여행도 한결 나아졌던거 같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에 와서도 우리 부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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